[반동연 한국교회 호소문]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오늘날 언론에서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를 작성하면 수많은 비판적인 댓글이 달립니다. 그 많은 댓글이 다 올바르다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많은 댓글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는 게 문제입니다.
요즘처럼 전도가 어려운 시대가 없습니다. 일부 특별하게 전도를 열심히 해서 열매를 거두는 교회가 있지만, 상당수는 열심히 애써도 전도열매가 적은 게 사실입니다. 예전엔 총동원전도주일을 통해 많은 사람이 교회에 출석했었고 그것을 미화시켰었지만, 끝까지 남아 충성스럽고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자리 잡은 경우는 기대한 만큼 많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우리 크리스천 한 사람 한 사람의 빛 된 삶의 모습, 교회가 세상에 ‘사랑의 빛’과 ‘거룩한 빛’을 비추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고 하나님을 믿게 되고 교회에 출석하는 경우가 많은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한국교회는 대(對)사회 설득 면에서 취약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반동성애운동을 하면서 느끼셨겠지만, 동성애가 죄라고 외치는 우리를 향하여 일부 비리를 저지른 목사들의 사례로 역공을 취했던 것을 봅니다(동성애진영의 반박논리가 합리적이거나 옳지도 않지만, 그에 호응하는 이들이 많다는 게 문제). 엘리제사장 시대(삼상 4장)에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4천 명을 잃고 모의를 해서 전장에 법궤를 모셔왔어도 결국 법궤마저 빼앗기고 3만 명이 몰살당하고, 종교지도자인 홉니와 비느하스와 엘리제사장마저 죽는 참극을 겪은 것을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건 반대 목소리만 높아질 때 혐오세력이라는 역공에 힘이 실리고 결국엔 미국처럼 당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성결해지고, 탐심을 버리고, 교회가 부패한 모습과 도덕‧성적으로 타락한 모습을 회개하고 정화시켜야만 정당성이 확보되고, 하나님께서도 우리 편이 돼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 손에 묻은 피(죄)를 씻어내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에 응답치 않으십니다(겔 7:21-24). 우리가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의 한숨소리와 절규의 외침에 귀를 막고 외면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기도에 응답치 않으십니다(잠 21:13). 교회내외부의 불만세력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때 부화뇌동하는 사람이 적다면 그 회오리바람은 이내 수그러듭니다. 그런데 그런 소리들이 자꾸 들려오는 건 지금 이 시대에 힘든 이들이 많고, 특히 20.30대청년들의 한숨소리와 불만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는 반증입니다. 그들의 한숨과 탄식소리를 외면하고 귀 기울이지 않으면, 얼마 남지 않은 장래에 그들에 의해 지금세대가 비판을 받고 냉혹히 버림당할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무서운 역사적 교훈입니다.
요 며칠 새 대기업총수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전역을 미룬 장병들을 특별 채용하겠다는 뉴스에 크리스천은 물론 일반국민들이 큰 박수를 보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 시대엔 그만큼 감동이 목마르다는 반증이겠지요. 그럼에도 한국교회만 이를 무시하고 역주행하면 어떻게 될까요?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더 크게 입을 벌릴 만큼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보여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평신도는 물론, 목회자들마저 그 대열에 기꺼이 합류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래 신문기사의 사례는 일부 중대형교회 담임목사의 경우입니다. 그런데 부목사‧전도사는 터무니없이 적은 수입이고, 개척교회목사는 적자‧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소수 중대형교회 목사님들의 <특권 지키기>가 한국교회 전체를 욕 먹이고, 하나님영광도 가리고 있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선 분명히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하셨습니다(마 22:21, 막 12:17, 눅 20:25). 즉, 가이사(정부)에게 세금을 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물며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들이 이 말씀을 달리 해석하고 끝까지 궁색한 <성직 논리>로 방어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다 결국 나중에 강제적으로 징수당하는 날이 오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 가면 소도 잃고 외양간도 잃는 참극을 겪게 되지 않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 이외의 ‘아디아포라’(adiaphora, 상관없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당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얻는 수입에 비해 액수가 얼마 안 되는 세금을 충분히 낼만한 중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세금을 안 내면 어느 누가 피해를 보게 될까요? 중대형교회나 그 교회 담임목사님들은 당장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여파로 소형교회나 개척교회는 당장 타격을 입고 전도현장에서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더욱 두려운 건 이런 일로 하나님영광이 가려지고, 하나님께서 ‘맘몬 신’ 정도로 불신자들로부터 오해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찌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있겠습니까?(마 6:24, 눅 16:13).
이 자리를 빌어 중대형교회 목사님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제 그만 인간적인 욕심, 돈과 재물과 명예에 대한 애착심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가난한 마음, 첫사랑을 기억하고 그때의 영성을 회복해주십시오! 아울러, 하나님을 더 이상 근심시키지 말아주시고 한국교회 전체를 깊이 헤아리시고 올바르게 처신해 주십시오! 아직 한국교회에 민족구원‧세계구원의 힘과 기회가 남아있을 때 아디아포라 문제로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의 애타하시는 심정을 헤아려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욕을 끼치는 불충한 종, 불효자는 제발 되지 말아 주십시오!
2015년 8월 28일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오늘날 언론에서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를 작성하면 수많은 비판적인 댓글이 달립니다. 그 많은 댓글이 다 올바르다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많은 댓글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는 게 문제입니다.
요즘처럼 전도가 어려운 시대가 없습니다. 일부 특별하게 전도를 열심히 해서 열매를 거두는 교회가 있지만, 상당수는 열심히 애써도 전도열매가 적은 게 사실입니다. 예전엔 총동원전도주일을 통해 많은 사람이 교회에 출석했었고 그것을 미화시켰었지만, 끝까지 남아 충성스럽고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자리 잡은 경우는 기대한 만큼 많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우리 크리스천 한 사람 한 사람의 빛 된 삶의 모습, 교회가 세상에 ‘사랑의 빛’과 ‘거룩한 빛’을 비추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고 하나님을 믿게 되고 교회에 출석하는 경우가 많은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한국교회는 대(對)사회 설득 면에서 취약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반동성애운동을 하면서 느끼셨겠지만, 동성애가 죄라고 외치는 우리를 향하여 일부 비리를 저지른 목사들의 사례로 역공을 취했던 것을 봅니다(동성애진영의 반박논리가 합리적이거나 옳지도 않지만, 그에 호응하는 이들이 많다는 게 문제). 엘리제사장 시대(삼상 4장)에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4천 명을 잃고 모의를 해서 전장에 법궤를 모셔왔어도 결국 법궤마저 빼앗기고 3만 명이 몰살당하고, 종교지도자인 홉니와 비느하스와 엘리제사장마저 죽는 참극을 겪은 것을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건 반대 목소리만 높아질 때 혐오세력이라는 역공에 힘이 실리고 결국엔 미국처럼 당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성결해지고, 탐심을 버리고, 교회가 부패한 모습과 도덕‧성적으로 타락한 모습을 회개하고 정화시켜야만 정당성이 확보되고, 하나님께서도 우리 편이 돼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 손에 묻은 피(죄)를 씻어내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에 응답치 않으십니다(겔 7:21-24). 우리가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의 한숨소리와 절규의 외침에 귀를 막고 외면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기도에 응답치 않으십니다(잠 21:13). 교회내외부의 불만세력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때 부화뇌동하는 사람이 적다면 그 회오리바람은 이내 수그러듭니다. 그런데 그런 소리들이 자꾸 들려오는 건 지금 이 시대에 힘든 이들이 많고, 특히 20.30대청년들의 한숨소리와 불만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는 반증입니다. 그들의 한숨과 탄식소리를 외면하고 귀 기울이지 않으면, 얼마 남지 않은 장래에 그들에 의해 지금세대가 비판을 받고 냉혹히 버림당할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무서운 역사적 교훈입니다.
요 며칠 새 대기업총수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전역을 미룬 장병들을 특별 채용하겠다는 뉴스에 크리스천은 물론 일반국민들이 큰 박수를 보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 시대엔 그만큼 감동이 목마르다는 반증이겠지요. 그럼에도 한국교회만 이를 무시하고 역주행하면 어떻게 될까요?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더 크게 입을 벌릴 만큼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보여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평신도는 물론, 목회자들마저 그 대열에 기꺼이 합류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래 신문기사의 사례는 일부 중대형교회 담임목사의 경우입니다. 그런데 부목사‧전도사는 터무니없이 적은 수입이고, 개척교회목사는 적자‧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소수 중대형교회 목사님들의 <특권 지키기>가 한국교회 전체를 욕 먹이고, 하나님영광도 가리고 있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선 분명히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하셨습니다(마 22:21, 막 12:17, 눅 20:25). 즉, 가이사(정부)에게 세금을 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물며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들이 이 말씀을 달리 해석하고 끝까지 궁색한 <성직 논리>로 방어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다 결국 나중에 강제적으로 징수당하는 날이 오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 가면 소도 잃고 외양간도 잃는 참극을 겪게 되지 않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 이외의 ‘아디아포라’(adiaphora, 상관없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당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얻는 수입에 비해 액수가 얼마 안 되는 세금을 충분히 낼만한 중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세금을 안 내면 어느 누가 피해를 보게 될까요? 중대형교회나 그 교회 담임목사님들은 당장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여파로 소형교회나 개척교회는 당장 타격을 입고 전도현장에서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더욱 두려운 건 이런 일로 하나님영광이 가려지고, 하나님께서 ‘맘몬 신’ 정도로 불신자들로부터 오해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찌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있겠습니까?(마 6:24, 눅 16:13).
이 자리를 빌어 중대형교회 목사님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제 그만 인간적인 욕심, 돈과 재물과 명예에 대한 애착심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가난한 마음, 첫사랑을 기억하고 그때의 영성을 회복해주십시오! 아울러, 하나님을 더 이상 근심시키지 말아주시고 한국교회 전체를 깊이 헤아리시고 올바르게 처신해 주십시오! 아직 한국교회에 민족구원‧세계구원의 힘과 기회가 남아있을 때 아디아포라 문제로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의 애타하시는 심정을 헤아려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욕을 끼치는 불충한 종, 불효자는 제발 되지 말아 주십시오!
2015년 8월 28일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