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들의 내면이 얼마나 황폐해 있는지, 동성을 향한 욕망/정욕의 늪에서 허우적이며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당사자 아니면 모를 것입니다.
그들을 절망/죄악의 늪에서 건져내려는 게 사랑인지, 그렇게 태어났으니 계속 그대로 허우적대다가 죽으라 내버려두는 게 사랑인지 상식적으로 판단해보면 아실 겁니다. 페친/반동연회원님의 글 공유합니다.
[Youngbo Lee]
몇 년전 동성욕에서 고통하는 자와 몇 달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거기서 탈출하고 싶어했다. 불행히도 그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비교적 시간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그의 삶은 동성욕을 지속적으로 해소하는 발판이 되었다. 정기적으로 섹스파트너를 찾기 위해 게이빠를 이용하였고, 그 파트너는 오래가지 못하고 늘상 바뀌었다. 그 친구에게서 동성욕자들 세계의 민낯을 상당한 부분 알 수가 있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자세한 용어는 기억나지 않지만,
예를 들면, 남자 파트너끼리 만났을 때 각기 남,여 역할을 하는 자들이 이름이 다르다. 웃기는게 동성애라고 하면서 자기들끼리 만나면 어느 한 쪽은 남자가 되고 다른 한 쪽은 여자역할을 하게 된다. 둘 다 같은 남성성에 끌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은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아름다움에 끌리는게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는 같은 성이지만,그 안에 다른 요소 즉, 자기에게 없는 이성성에 끌린다는 점이다. 이로 보건대, 사람은 이성에 끌리는 것이 정상이다.
무튼, 그 동성욕 선생님은 무척 괴로워했다. 자주 하나님을 원망했다. 자기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하나님이 그렇게 태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의 책임을 피하는 유일한 출구였다. 괴로워서 밤마다 술마시고 정욕을 해소하기 위해 게이빠를 찾고, 하루밤 파트너와 합의하여 몸을 섞지만 뒤에는 후유증이 더 심하고, 서로 눈이 맞아서 교제하지만 오래 못가고..이들은 정말 영혼이 피폐했다.
이러한 사례를 예를 들면 소수라고 생각할 것이다. 대부분 언론, 드라마, 영화에서 동성애를 아름답게 묘사하고 동성애자들이 사회적으로 핍박받는 소수처럼 미화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론이 생성한 이 거대한 메트릭스에서 현실처럼 여기고 있다. 실체와 진실을 경험하지 않고 왜곡된 정보를 귀로만 듣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정욕의 세계를 끝없이 미화시키며 확장시키고 있다.
괴로와하던 그 친구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일이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성령님을 초대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니까... 그는 그토록 괴로워하면서 하나님께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그냥 힘들어할 뿐이었다. 그 힘겨움을 술과 동성성욕으로 해소하는 것 같았다.
나는 메일로 질문을 했다. '형제가 진짜 거기서 벗어나고 싶은 의지가 있는가?'라는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질문은 마지막 질문이 되었다. 그 질문에 형제는 답이 없었고 연락이 두절되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였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셔도 우리 스스로가 문제 의식을 깨닫고 벗어나려고 도움을 구하지 않는한 벗어나지 못한다. 의지가 없는 자들은 무슨 방법을 써도 안된다. 의지가 상실되면 감정과 욕망의 노예가 된다.
그 후로도 동성애 성향을 가진 또 다른 청년을 만났지만, 그 역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 그냥 괴로워할 뿐이었다. 술을 끊어야겠는데 못끊고 괴로워하는 알콜 중독자에게 자유란 무엇일까? 세상은 그런 자들에게 괜찮아..너는 술을 좋아하도록 창조되었어라고 인정하는게 사랑이며 자유일까? 건져내야하지 않겠는가?
현대는 너무나도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윤리조차도 온갖 학문과 신학, 과학으로 꼬이게 만들어서 무슨 대단한 이론이 있는양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지만, 결국 죄를 정당화하는 보조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동성애 관련 내용들이 회자될 때마다 10여년 전 그 친구가 자꾸 생각난다..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게이빠에 아직도 들락거리는지..어떤 남자와 가정은 꾸렸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