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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셉결혼칼럼] 《크리스천청년이 결혼 못하는 이유‧1》
2019-10-09 19:00:42 | ahcs | 0 | 조회 117 | 덧글 0

[주요셉결혼칼럼]

《크리스천청년이 결혼 못하는 이유‧1》



요즘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결혼하지 못한 미혼자들이 넘쳐나는 걸 보게 됩니다. 교회 내에서든 교회 밖에서든 결혼 안하고 혼자 사는 게 마치 특권적 삶인 양 미화시키는 언론보도에 세뇌된 탓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부화뇌동’이며, ‘비성경적 행동’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자율적으로 결혼 없이 혼자 사는 게 가능한 경우는 단 하나, 하나님께 선택받은 ‘독신은사자’일 때뿐입니다(고전 7:7). 예외적으로 결혼 없이 혼자 사는 걸 허용하는 경우라도(마 19:12), 선천적 고자이거나 사람에 의한 고자, 아니면 스스로 주님을 위해 일평생 헌신하겠노라 결단했을 경우에만 해당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주변을 돌아보면 이와 별개로 자신의 맘에 드는 이성을 못 만났기 때문에 결혼을 회피하다가 나이를 훌쩍 먹어 아예 결혼기회가 박탈되거나 어쩔 수 없이 단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는 전혀 주님의 뜻과 무관한 인간적 불순종에 따른 자업자득의 결과이지, 헌신된 믿음으로 인한 실패의 결과가 전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에 하나님께 오랜 시간 헌신한 결과 결혼까지 못했다는 자조와 탄식이 흘러넘침은 어인 일일까요. 그렇게 잘못 가르치고 인도한 영적 리더의 잘못일까요, 아니면 겸손과 순종의 길로 나가지 못하고 교만과 고집과 탐심으로 기도한 잘못된 결과물일까요. 양쪽 모두에 잘못이 있겠지만, 필자는 우선 미혼당사자의 각성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후자의 책임이 크다는 쪽으로 정리하려 합니다.

오래 전부터 교회 내 성도의 수평이동이 결혼문제 미해결과 상당히 밀접해 있음을 호소하듯 지적했습니다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반향(反響)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는 목회자들의 영적 무지와 무관심, 기독교언론종사자들의 무책임과 직무유기, 목회전문지종사자들의 왜곡된 시각과 헛다리짚기에 기인한 결과입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묻기라도 해야 하는데, 주워들은 지식만 있고 현장경험도 없는 사람이 모든 걸 다 안다는 식의 지적 허영심과 현학적 우월주의에 도취한 까닭입니다. 대충 글 좀 쓴다고 모두가 전문작가가 아니며, 그림 좀 그린다고 전문화가가 아니며, 노래 좀 한다고 전문성악가나 전문싱어가 아니듯, 어떤 분야에서든 최소 10년 이상 몸담고 헌신하지 않았을 경우엔 그 분야의 문외한이라는 겸손한 자세를 갖춰야 함에도, 기독교 내에서든 일반사회 내에서든 분수를 넘어 유아독존, 교만한 눈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 중 목회자와 기자들이 가장 최악의 부류일 것입니다.

어쨌든, 지금 한국사회에서든 한국교회에서든 결혼 못한 청년들의 문제가 가장 심각합니다. 그들이 결혼 못한 원인을 단지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해석하는 기자들은 반쪽짜리 전문가밖에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점을 과장해 기사를 남발하는 기자는 사이비기자일 확률이 높습니다. 어찌 미혼청년들이 결혼 못하고 있는 원인이 단지 남들만큼 돈이 없기 때문일까요. 헛다리를 짚어도 한참 헛다리를 짚은 분석기사일 뿐입니다. 미혼청년들이 왜 결혼 못하는지 통계청의 자료만 참고하지 말고 직접 수백 명, 수천 명을 인터뷰해보면 금방 답이 나올 텐데 남들이 쓴 기사를 거의 표절수준으로 베껴서 기사를 남발하다 보니 잘못된 분석기사가 난무하게 된 것입니다. 또 그렇게 편향된 시각의 기사를 마치 전문가의 분석인 것처럼 맹신하는 우매한 독자들로 인해 우리사회의 부조리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사회든 교회든 이대로 청년들의 결혼문제를 방치했다간 다음세대에 재앙을 초래할 게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미 국가적으로 재난경고등이 번쩍이고 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고 보신주의와 무관심으로 자리 지키기에 연연하는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우리 사회 어느 분야든 진정한 애국자와 사명자는 보이지 않고 매국노와 간신배, 기회주의자만 판을 치고 있으니 예레미야와 같은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단언컨대, 지금 이대로 청년들을 방치했다간 곳간이 텅 비듯 교회당이 텅텅 비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미 상당수의 교회가 그런 상태이며, 수평이동의 단맛에 도취한 대형교회들마저 머잖아 쓰라린 후회의 눈물을 흘릴지도 모릅니다. 이런 참담한 미래를 예감하는 필자의 심정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나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미혼청년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시고 아낌없이 예산과 사랑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십시오. 그들이 조금만 힘을 얻고 일어서면 놀라운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그들을 주님의 은총 가운데 믿음의 커플로 세워 하나님께 헌신시키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청년들은 나라의 미래이자, 교회의 미래입니다. 그들을 방치하고 외면하면서 어떻게 다음 세대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국가지도자든 교회지도자든 대오 각성해야 하며, 정책의 최우선순위를 청년세대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국가에 희망이 있고, 교회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그들이 패잔병처럼 맥없이 지쳐 쓰러져가는 현실을 방치한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며, 하나님께도 범죄하는 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엄청나게 낭비되는 국가예산은 청년들에게 과감히 돌려 집행돼야 하며, 교회예산도 청년들에게 과감히 투자돼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세대에 희망이 있습니다.

사회구조적 원인을 떠나 개인적으로 교회 내 미혼청년들이 결혼 못하는 이유 중 첫 번째는 ‘준비부족’입니다. 지난 십수 년 간 크리스천미혼청년들을 대상으로 결혼사역을 진행해오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결혼에 대한 준비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나이와 상황에 떠밀려 결혼식장으로 나오는 청년들입니다. 그러다보니 배우자선택에 대한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결국엔 결혼 후 이혼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전과 달리 일반인들의 이혼율과 크리스천의 이혼율이 큰 차이를 안 보이는 건 그만큼 신앙교육과 결혼준비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왔다는 반증일 겁니다.

더구나 차일피일 결혼을 미루면서 독신은사자도 아닌 채, 주님을 향해 불타는 헌신을 보이지도 않은 채 무작정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만혼(晩婚) 청년들을 바라보노라면 한숨과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저들에게 시급히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인 처방을 내려줘야 하지만,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은 유유자적할 뿐입니다. 아니,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은둔의 동굴’ 속에서 홀로 괴로워하면서도 무풍지대인 대형교회에서 가면을 쓴 듯 은혜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교회규모와 상관없이 결혼은 개별당사자의 몫이라는 겁니다. 대형교회든 중소형교회든 미혼청년들은 교회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못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다보니 미혼청년들은 신앙 따로 결혼 따로 생각하는 흐름에 젖어 버렸습니다. 교회가 이 문제를 방치해오다보니 교회에 아무런 기대감을 품지 않게 됐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세상에 눈길을 돌려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결혼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예인들의 화려한 결혼을 동경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자신의 분수에 맞는 배우자와 만나 결혼하겠다는 현실적 꿈보다 상상속의 배우자에 대한 로망을 품고 오매불망 금식기도하며 주님께 떼쓰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기도했는데도 결혼기도의 응답이 없다보니 믿음도 식어지고 점점 사소한 것들에 시험 드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맙니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의 감정도 날로 커갑니다.

그런데 이 모든 원인이 바로 당사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본인은 모릅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이 내 탓이 아닌 남의 탓이 돼버린 탓에 어느 누구로부터도 조언을 듣거나 권면받길 거부합니다. 소위 ‘직통계시’에 의존하는 경향이 날로 커집니다. 그러나 결혼은 그렇게 일방적 직통계시로만 이뤄지지 않기에 비극입니다. 결혼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기에, 어느 한쪽의 의지와 신념과 기도와 믿음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 겸손히 무릎 꿇고 기도하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그들 대부분 오랜 시간 내면 속에 키워온 불신과 원망과 아집과 결벽증 탓에 어느 누구에게도 손을 벌리지 않고, 성경말씀도 모두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도구로만 활용할 뿐 주님 앞에 벌거벗은 채 바짝 엎드리지도 못합니다. 불필요한 허울을 둘러쓰고 어린아이와 같은 초심을 잃어버린 채 귀만 높아가고 지식만 팽창하는 바리새인과도 같은 신앙인으로 변질돼갑니다. 그러면서도 심령을 날로 메말라갑니다. 차라리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탄식하면 좋으련만, 그럴 열정과 기력마저 상실한 채 하루하루 허덕이며 살아갑니다. 감동마저 메말라버린 탓에 눈물의 기도조차 안 나옵니다. 그러면서도 남들에게 내세울 만한 번듯한 결혼식을 보여주려 합니다. 이 정도가 되면 결혼의 의미가 행복하고 진실한 결혼이라기보다, 과시하고 보여주기 위한 결혼식으로 변질돼 버립니다. 분명 나이 어렸을 때는 전혀 그렇질 않았음에도, 나이를 훌쩍 먹어가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세속화되고 세상풍조에 휩쓸려버리게 되는 거겠지요.

이렇게 생각하면 그들은 대부분 선의의 피해자입니다. 교회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잃어버린 양떼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목자들이 없다 보니 그들은 점점 이리의 손쉬운 먹잇감이 돼갑니다. 오호라! 이 일을 어이할까요.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그들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겸손한 자세로 내려앉아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무릎 꿇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일단 교회는 그들에게 원망과 유기의 감정을 치유해줘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들이 주님과 목회자들에게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해질 것입니다. 이 상태로는 그들은 치받는 양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큽니다.

결론적으로 그들이 자신의 눈높이를 직시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배우자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자신에게 어떤 점이 부족하고 어떤 문제가 남아있어 결혼문제가 안 풀렸는지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결혼하지 못한 채 그토록 나이를 훌쩍 먹게 됐는지 이해해주고 따뜻한 말로 위로해줘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들의 응어리가 풀릴 것이며, 눈물샘이 터질 것이며, 진정으로 주님 앞에 회개하는 기도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사실 그들을 따끔히 야단치려다가도 교회현실을 돌아보면 오히려 그들에게 미안해지고, 눈물이 납니다. 그들은 잘못된 교회시스템의 피해자들입니다. 그들은 원치 않는 독신은사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이 뭔지도 모른 채 나이만 훌쩍 먹은 어린아이와도 같은 순진하고 철없는 신앙인일 뿐입니다. 그들을 그렇게 결혼에 아무런 준비 없도록 만든 책임은 우리 기성세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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