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동성결혼합법화가 초래한 남블라 소아성애자연합
최근 들어 남블라(NAMBLA, North American Man/Boy Love Association)라는 미국 캐나다 소아성애자 연합이 큰 논란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단체가 버젓이 존재할 수 있는지 의아할 것이다. 이들은 미국 현행법상 소아성애는 중범죄에 해당하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실제행동을 제외한 논리적, 철학적, 인권, 사회적 관점에서 자신의 성애가 하나의 소수성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주장하는 단체이다.
웹사이트 첫 화면 머리글에서 그들은 "동성결혼합법화를 축하하지만 유감스런 마음도 감출 수 없다."며 글을 시작한다. 이유인즉 동성애자들이 소아성애자들과 선을 긋고 자신들의 성소수자 운동에서 소아성애자들을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들은 소아성애, 피도필리아(pedophilia)란 용어를 ‘소년과의 사랑’으로 대체 순화하여 사용한다.
그들은 말한다, "소년과의 사랑도 고대부터 존재해왔고, 동성애와 같은 차별을 받아온 소수성애 중 하나다."라고. 그리고 미국에서 LGBT의 소수성애가 인정받고 축하받는 것처럼 소년과의 사랑 또한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은 LGBT 세력이 소아성애자들을 자신의 운동에 리스크 요소로 여기고 선을 긋고 있고, "현재 미국의 LGBT는 만약 알랜 긴스버그, 오스카와일드, 소크라테스와 같은 수많은 선각자들이 지금 살아있었다면 그들과도 선을 긋는 모순을 저질렀을 것이다.”라며 불만을 호소하고 있다. (여기 언급된 역사인물들은 모두 소아성애를 옹호한 전적이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무지갯빛 남블라 로고를 봐도 그들이 동성애자들과 다를 바 없는 또 하나의 성소수자로 인정받기 원하고 있다는 의도를 알 수 있다.
동성애, 양성애, 성전환 등이 소아성애와 같은 범죄와 동일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소아성애 당사자들이 이미 이런 논리를 자신들의 '인권' 운동에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초래한 것은 누구일까? 예전에는 감히 모습조차 드러내지 못했던 사람들이 동성결혼합법화 이후부터는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놓고 대중, 사회에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동성애자 양성애자 등만 인정하고 소아성애자에게 선을 그으려고 해도 ‘성적취향은 존중되어야할 인권’이란 논리로 동성애를 인정해버린다면 특정 소수집단을 입맛대로 골라 배척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남블라 소아성애자들이 이미 벌써 동성애자들이 써오던 방법 그대로 고대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까지 들먹이며 자신들을 합리화하려고 하고 있지 않는가. 소크라테스는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애를 합리화하기 위해 단골로 인용하는 고대 그리스철학자이다. 그가 소아성애도 옹호했다는 사실은 깜빡했던 것일까? 동성애를 인권이라 인정하고 또 다른 사랑의 방식이라고 합리화한다면 똑같은 논리로 소아성애를 합리화하지 못하란 법도 없지 않은가.
결국 소아성애가 합법화까지 되진 않더라도 미성년자들의 성적자기결정권이 하향 조절되거나 아동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유해지며 그에 따른 처벌의 수위 또한 낮아지고, 결국 어린아이들이 그만큼 성범죄에 노출돼 버리는 상황 정도는 얼마든지 예측해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 동성결혼 합법화에 찬성의견을 냈던 루스 긴즈버그(Ruth B. Ginsburg) 전 미대법관은 ACLU변호사시절 미국의 성적결정권 제한나이를 12살로 낮추는 법안을 공동 작성했었고, 세계 동성애운동의 대부와 같은 피터 탯첼(Peter Tatchell) 또한 나이제한을 12살로 낮추기를 주장해오고 있다. 이런 논의가 나오는 것은 사회의 모든 틈을 노리고 확장하고자 하는 동성애운동의 기질 때문인데, 성인들 간의 동성애를 정당화하고 차별금지법에 호응적인 사회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다음세대를 이을 어린학생들에게 일찌감치 동성애를 옹호하도록 사상을 심으려고 하는 것이다. 섹스를 알 필요가 없는 나이의 어린아이들에게 굳이 성교육을 시켜 성적호기심을 자극시켜 놓으니 결국 성적결정권의 나이를 낮추니 마니 하는 한심한 논쟁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사회 모든 상하관계를 억압·지배·복종의 구조로 해석하면 안 된다. 어린아이들에게 성적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은 억압이 아니다. 인권조례로 이것을 억압이라 가르치고, 안 그래도 교사들에게 ‘꼰대’, ‘담텡이’라는 별명을 씌우는 학생들의 반항심을 부추겨 이른 성생활을 하게 하고, 동성애를 옹호토록 하여 결국 다음세대의 사회를 동성애에게 우호적이게 만들려는 것은 어른들의 이기적인 사회운동이다. 어른들이 지도하는 것이 억압이라면 교사를 다 없애고, 학생들끼리 자유롭게 토론하고, 자신들끼리 서로 가르치게 해야 할까? 왜 소위 진보언론, 세력들이 앞다투어 학생인권조례를 비호하고 학생들에게 동성애를 옹호하게끔 가르치려는 걸까? 왜 학교에서까지 좌우대립 패러다임을 씌우려는 것일까?
논란덩어리의 동성애이슈에 좌우, 상하 억압의 페러다임을 입히는 순간, 이미 분열된 대한민국은 다시 또 토막이 나게 된다. 빨갱이 대 수구꼴통으로 분열돼 있는 사회가 ‘반동성애=개독교’라는 말로 특정종교를 비하하고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고 있지 않은가? 동성애문제를 가장 민주적이고 논리적이게 해결하는 방법은 정치진영에서 벗어나 그것을 보편적 윤리와 보건상식의 문제로 다루어나가는 것이다.
인간은 깊은 사고와 감정을 가진 존재지만 엄연히 생물이다. 인류는 물리적 생물학적 사실과 현실에 입각하여 사회를 형성하고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번식과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자연의 이치이며, 병약한 노인과 자립할 능력이 없는 아이들과 동물을 배려하는 것, 남성과 여성이 각자 자신의 주어진 신체에 알맞게 행동하는 것 등등, 이 모든 현실에 입각한 행위, 생각, 행동들의 상호 연쇄작용이 결국 가족, 커뮤니티, 사회, 그리고 국가의 순기능을 보전하고 유지시키는 것이다.
개념, 이상, 관념 등은 주관적일 수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 사실에는 정확한 객관적인 정의가있어야 한다. 현실에 입각하여 과학과 의학이 발전한다. 현실을 철학과 감성으로 해석할 순 있지만, 철학적 관념이 현실을 대체할 수는 없다. 동성애인권 운동이 이렇다. 해부학적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동성이 서로 관계를 하고 부부가 되는 것이 정상이라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철학적 정치적 관념으로 ‘현실’을 재정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끼리 정의한 ‘사랑’과 ‘포용’으로 자신들끼리 정의한 ‘혐오’와 ‘차별’에 맞서 존재하지도 않는 허깨비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 몸담고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의할 수도 공감할 수도, 할 필요도 없는 주관적인 자의적인 가치를 강요, 주입, 보편화시키려는 것이다.
생물학적 순기능을 역행하면서까지 이 작금의 비합리적인 자의적 가치에 수천 년 간 문화와 문명을 축적시켜왔고, 앞으로 계속 번식해나갈 인류가 동참하고 맞장구쳐주길 바라는 것인가? 남녀의 결합은 5천 년 전부터 존재해왔다. 성적자유 성소수자 권리가 고대 폼페이와 소돔에서 잠시 유행했지만, 재빨리 더욱 영속적이고 안정적인 남녀결합으로 대체되었다. 현재 동성결합을 인정하는 국가는 대만을 제외하곤 모두 서구제국주의와 그들의 지배를 받았던 전 식민지국가들이다. 예외인 대만 또한 서구의 지대한 영향을 받고 답습하는 나라로 유명하다. 반대로 결혼을 남녀만의 결합으로 정의하는 나라는 171개국이나 된다. 결국 현재의 동성양성애 LGBT문화 또한 범인류적 영속성이 없는 단지 현시대에 국한된 서구 도입(Western Imposition)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사회는 동성애를 이성애와 엄격히 구분하고 그것이 초래하는 폐해와 부작용에 대해 정확히 교육, 공표하여야 한다. 우리는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이 모든 행동에 있어서 무절제한 개인적 자유를 앞세우기보다 책임 있는 결정과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강요할 자격이 있고, 그것이 사회에 일으킬 실질적 파장에 대해서도 지속적이고 현실적으로 논의 토론하고 개선해 나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운동을 진보적 가치인 양 얼렁뚱땅 둔갑시켜버렸다. 한 사회가 생산적인 진보를 하기 위해서는 토대가 필요하다. 우리 문화와 사회의 근간을 수천 년 간 지탱시켜준 뿌리가 필요하다. 그 뿌리 자체를 단지 오래되었다며 잡아 뽑으려는 시도와 무모한 정치사회적 실험은 진보가 아니라 사회의 해체와 분열, 파괴적인 연쇄반응을 초래하는 극단적이고 파행적인 퇴보다.
김백호 (반동연회원/자유기고가)
■남블라(NAMBLA) 사이트 : https://www.nambla.org/crimyout.html
동성결혼합법화가 초래한 남블라 소아성애자연합
최근 들어 남블라(NAMBLA, North American Man/Boy Love Association)라는 미국 캐나다 소아성애자 연합이 큰 논란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단체가 버젓이 존재할 수 있는지 의아할 것이다. 이들은 미국 현행법상 소아성애는 중범죄에 해당하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실제행동을 제외한 논리적, 철학적, 인권, 사회적 관점에서 자신의 성애가 하나의 소수성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주장하는 단체이다.
웹사이트 첫 화면 머리글에서 그들은 "동성결혼합법화를 축하하지만 유감스런 마음도 감출 수 없다."며 글을 시작한다. 이유인즉 동성애자들이 소아성애자들과 선을 긋고 자신들의 성소수자 운동에서 소아성애자들을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들은 소아성애, 피도필리아(pedophilia)란 용어를 ‘소년과의 사랑’으로 대체 순화하여 사용한다.
그들은 말한다, "소년과의 사랑도 고대부터 존재해왔고, 동성애와 같은 차별을 받아온 소수성애 중 하나다."라고. 그리고 미국에서 LGBT의 소수성애가 인정받고 축하받는 것처럼 소년과의 사랑 또한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은 LGBT 세력이 소아성애자들을 자신의 운동에 리스크 요소로 여기고 선을 긋고 있고, "현재 미국의 LGBT는 만약 알랜 긴스버그, 오스카와일드, 소크라테스와 같은 수많은 선각자들이 지금 살아있었다면 그들과도 선을 긋는 모순을 저질렀을 것이다.”라며 불만을 호소하고 있다. (여기 언급된 역사인물들은 모두 소아성애를 옹호한 전적이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무지갯빛 남블라 로고를 봐도 그들이 동성애자들과 다를 바 없는 또 하나의 성소수자로 인정받기 원하고 있다는 의도를 알 수 있다.
동성애, 양성애, 성전환 등이 소아성애와 같은 범죄와 동일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소아성애 당사자들이 이미 이런 논리를 자신들의 '인권' 운동에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초래한 것은 누구일까? 예전에는 감히 모습조차 드러내지 못했던 사람들이 동성결혼합법화 이후부터는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놓고 대중, 사회에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동성애자 양성애자 등만 인정하고 소아성애자에게 선을 그으려고 해도 ‘성적취향은 존중되어야할 인권’이란 논리로 동성애를 인정해버린다면 특정 소수집단을 입맛대로 골라 배척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남블라 소아성애자들이 이미 벌써 동성애자들이 써오던 방법 그대로 고대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까지 들먹이며 자신들을 합리화하려고 하고 있지 않는가. 소크라테스는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애를 합리화하기 위해 단골로 인용하는 고대 그리스철학자이다. 그가 소아성애도 옹호했다는 사실은 깜빡했던 것일까? 동성애를 인권이라 인정하고 또 다른 사랑의 방식이라고 합리화한다면 똑같은 논리로 소아성애를 합리화하지 못하란 법도 없지 않은가.
결국 소아성애가 합법화까지 되진 않더라도 미성년자들의 성적자기결정권이 하향 조절되거나 아동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유해지며 그에 따른 처벌의 수위 또한 낮아지고, 결국 어린아이들이 그만큼 성범죄에 노출돼 버리는 상황 정도는 얼마든지 예측해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 동성결혼 합법화에 찬성의견을 냈던 루스 긴즈버그(Ruth B. Ginsburg) 전 미대법관은 ACLU변호사시절 미국의 성적결정권 제한나이를 12살로 낮추는 법안을 공동 작성했었고, 세계 동성애운동의 대부와 같은 피터 탯첼(Peter Tatchell) 또한 나이제한을 12살로 낮추기를 주장해오고 있다. 이런 논의가 나오는 것은 사회의 모든 틈을 노리고 확장하고자 하는 동성애운동의 기질 때문인데, 성인들 간의 동성애를 정당화하고 차별금지법에 호응적인 사회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다음세대를 이을 어린학생들에게 일찌감치 동성애를 옹호하도록 사상을 심으려고 하는 것이다. 섹스를 알 필요가 없는 나이의 어린아이들에게 굳이 성교육을 시켜 성적호기심을 자극시켜 놓으니 결국 성적결정권의 나이를 낮추니 마니 하는 한심한 논쟁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사회 모든 상하관계를 억압·지배·복종의 구조로 해석하면 안 된다. 어린아이들에게 성적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은 억압이 아니다. 인권조례로 이것을 억압이라 가르치고, 안 그래도 교사들에게 ‘꼰대’, ‘담텡이’라는 별명을 씌우는 학생들의 반항심을 부추겨 이른 성생활을 하게 하고, 동성애를 옹호토록 하여 결국 다음세대의 사회를 동성애에게 우호적이게 만들려는 것은 어른들의 이기적인 사회운동이다. 어른들이 지도하는 것이 억압이라면 교사를 다 없애고, 학생들끼리 자유롭게 토론하고, 자신들끼리 서로 가르치게 해야 할까? 왜 소위 진보언론, 세력들이 앞다투어 학생인권조례를 비호하고 학생들에게 동성애를 옹호하게끔 가르치려는 걸까? 왜 학교에서까지 좌우대립 패러다임을 씌우려는 것일까?
논란덩어리의 동성애이슈에 좌우, 상하 억압의 페러다임을 입히는 순간, 이미 분열된 대한민국은 다시 또 토막이 나게 된다. 빨갱이 대 수구꼴통으로 분열돼 있는 사회가 ‘반동성애=개독교’라는 말로 특정종교를 비하하고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고 있지 않은가? 동성애문제를 가장 민주적이고 논리적이게 해결하는 방법은 정치진영에서 벗어나 그것을 보편적 윤리와 보건상식의 문제로 다루어나가는 것이다.
인간은 깊은 사고와 감정을 가진 존재지만 엄연히 생물이다. 인류는 물리적 생물학적 사실과 현실에 입각하여 사회를 형성하고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번식과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자연의 이치이며, 병약한 노인과 자립할 능력이 없는 아이들과 동물을 배려하는 것, 남성과 여성이 각자 자신의 주어진 신체에 알맞게 행동하는 것 등등, 이 모든 현실에 입각한 행위, 생각, 행동들의 상호 연쇄작용이 결국 가족, 커뮤니티, 사회, 그리고 국가의 순기능을 보전하고 유지시키는 것이다.
개념, 이상, 관념 등은 주관적일 수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 사실에는 정확한 객관적인 정의가있어야 한다. 현실에 입각하여 과학과 의학이 발전한다. 현실을 철학과 감성으로 해석할 순 있지만, 철학적 관념이 현실을 대체할 수는 없다. 동성애인권 운동이 이렇다. 해부학적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동성이 서로 관계를 하고 부부가 되는 것이 정상이라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철학적 정치적 관념으로 ‘현실’을 재정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끼리 정의한 ‘사랑’과 ‘포용’으로 자신들끼리 정의한 ‘혐오’와 ‘차별’에 맞서 존재하지도 않는 허깨비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 몸담고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의할 수도 공감할 수도, 할 필요도 없는 주관적인 자의적인 가치를 강요, 주입, 보편화시키려는 것이다.
생물학적 순기능을 역행하면서까지 이 작금의 비합리적인 자의적 가치에 수천 년 간 문화와 문명을 축적시켜왔고, 앞으로 계속 번식해나갈 인류가 동참하고 맞장구쳐주길 바라는 것인가? 남녀의 결합은 5천 년 전부터 존재해왔다. 성적자유 성소수자 권리가 고대 폼페이와 소돔에서 잠시 유행했지만, 재빨리 더욱 영속적이고 안정적인 남녀결합으로 대체되었다. 현재 동성결합을 인정하는 국가는 대만을 제외하곤 모두 서구제국주의와 그들의 지배를 받았던 전 식민지국가들이다. 예외인 대만 또한 서구의 지대한 영향을 받고 답습하는 나라로 유명하다. 반대로 결혼을 남녀만의 결합으로 정의하는 나라는 171개국이나 된다. 결국 현재의 동성양성애 LGBT문화 또한 범인류적 영속성이 없는 단지 현시대에 국한된 서구 도입(Western Imposition)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사회는 동성애를 이성애와 엄격히 구분하고 그것이 초래하는 폐해와 부작용에 대해 정확히 교육, 공표하여야 한다. 우리는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이 모든 행동에 있어서 무절제한 개인적 자유를 앞세우기보다 책임 있는 결정과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강요할 자격이 있고, 그것이 사회에 일으킬 실질적 파장에 대해서도 지속적이고 현실적으로 논의 토론하고 개선해 나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운동을 진보적 가치인 양 얼렁뚱땅 둔갑시켜버렸다. 한 사회가 생산적인 진보를 하기 위해서는 토대가 필요하다. 우리 문화와 사회의 근간을 수천 년 간 지탱시켜준 뿌리가 필요하다. 그 뿌리 자체를 단지 오래되었다며 잡아 뽑으려는 시도와 무모한 정치사회적 실험은 진보가 아니라 사회의 해체와 분열, 파괴적인 연쇄반응을 초래하는 극단적이고 파행적인 퇴보다.
김백호 (반동연회원/자유기고가)
■남블라(NAMBLA) 사이트 : https://www.nambla.org/crimyout.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