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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13] 반대파 진지 조용히 무너뜨린 오바마의 전략
2017-08-20 01:14:58 | ahcs | 0 | 조회 4421 | 덧글 0
▷미국의 <동성결혼합법화>의 배경과 <다수파전략>에 대한 분석 기사를 다시 게시합니다.

이러한 미국의 실패사례를 본받아 치밀한 전략을 세우지 않고 우왕좌왕하다간 대한민국도 조만간 속절없이 무너질 것입니다.
그때 가서 뒤늦게 후회하고 땅을 쳐봐야 소용없습니다.
훗날 결사항쟁의 마음이 있다면 지금부터 그 마음을 표출하고 힘을 모아야 하며, 고도의 전략으로 맞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즉흥적, 감정적, 일시적, 분열적으로 대처했다간 6.25전쟁과 같은 참담한 결과를 모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대파 진지 조용히 무너뜨린 오바마의 전략】

1988년 동성혼 권리에 동의한다는 미국내 여론은 12%에 불과했다.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지지 여론은 다섯 배나 뛰어올랐고 ‘동성혼 법정 인정’까지 이르렀다. 이런 변화에는 다수파 전략이 스며 있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3813&dable=10.1.1


반대파 진지 조용히 무너뜨린 오바마의 전략

1988년 동성혼 권리에 동의한다는 미국내 여론은 12%에 불과했다.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지지 여론은 다섯 배나 뛰어올랐고 ‘동성혼 법정 인정’까지 이르렀다. 이런 변화에는 다수파 전략이 스며 있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2015년 07월 13일 월요일 제408호


한 동성애 보수주의자의 ‘역사적 전략’
오바마가 박수 칠 때 어느 나라는 목을 친다
나라별 동성결혼 합법화, 어디까지 왔나
무지개 뜨던 날 사랑을 말하다
“우리의 혼인신고를 허하라”



2015년 6월26일은 역사에 기록될 날이다. 이날 미국 연방 대법원은 결혼의 권리가 인간의 기본권에 속하므로, 연방에 속하는 모든 주 정부는 동성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막을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관 아홉 명의 의견은 한 표 차이로 갈렸다. 5대 4였다. 이로써 동성혼은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가 되었다.

미국은 동성혼의 권리를 인정한 스무 번째 국가다(나라별 동성결혼 합법화, 어디까지 왔나 참조).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갖는 영향력과 상징성을 고려하면 20분의 1을 훌쩍 뛰어넘는 의미가 있다. 이전까지 동성혼 법제화 소식이 ‘별난 나라들의 별난 해외 토픽’ 정도로 소비되었다면, 미국의 결정은 동성혼 법제화가 조만간 국제사회의 표준이 되리라는 강력한 신호다.

미국의 주요 언론은 성소수자 차별 문제를 넘어, ‘인간의 기본권이 확장되어온 역사에서 가장 최근에 거둔 승리’라는 관점으로 동성혼 권리를 조명했다. 인권의 역사에서 노예해방이나 여성참정권과 나란히 놓일 중대한 사건이라는 의미다.

<뉴욕 타임스>가 운영하는 데이터 저널리즘 페이지인 ‘업샷’은 6월30일자 기사에서, 동성혼과 같은 ‘인간 기본권을 확장하는 이슈’에 대해 미국의 여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호의적으로 흐른다고 분석했다. 동성혼, 인종 간 결혼, 흑인·여성·유대인·가톨릭·무신론자 대통령에 대한 태도 등의 질문에 여론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방향은 일관되게 전향적으로 바뀌어간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6월26일 연방 대법원의 동성혼 인정 판결 이후에 백악관은 무지갯빛 조명을 쏘아 올렸다.
ⓒAP Photo
6월26일 연방 대법원의 동성혼 인정 판결 이후에 백악관은 무지갯빛 조명을 쏘아 올렸다.


동성혼은 그중에서도 독특하다. 1988년 미국 종합사회조사에서 동성혼 권리에 동의한다는 응답은 12%였다. 이 비율은 불과 20년 만인 2008년에 세 배 넘게 뛰어올라 39%에 이르렀다. 이후로는 더 속도가 붙었다. 2015년 6월 갤럽 조사에서는 동성혼 권리에 찬성하는 응답이 60%였다.

한 세대에 해당하는 30년이 채 되기도 전에, 동성혼 지지 여론은 다섯 배나 뛰어올랐다. <블룸버그>는 여성참정권, 인종 간 결혼, 낙태 등의 주요 이슈와 비교해보아도 동성혼에 대한 미국 사회의 방향 전환이 단연 빠른 시간에 이루어졌다고 분석했다. 연방 대법원이 사고를 친 게 아니었다. 미국 사회가 사고를 쳤고, 연방 대법원은 단지 이를 사후 추인했다.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2010년에 출간한 <아메리칸 그레이스>에서 마치 현재를 예언한 듯한 주장을 내놓았다. 동성혼에 대한 태도는 세대에 따라 크게 다른데, 젊은 세대가 동성혼을 받아들이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동성혼 반대 여론은 소수파로 고립될 운명이어서, 공화당이 이 이슈를 써먹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퍼트넘은 내다봤다.

예언은 곧 현실이 되었다. 2014년 버지니아 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마크 워너는 공화당 후보 에드 길레스피의 낙태·피임·동성혼에 대한 태도가 보수적이라며 공격을 퍼부었다. 낙태와 동성혼은 한 세대 동안 민주당의 금기어였으나, 이제는 아니다. 길레스피는 “내 종교적 관점이 선거에서 이슈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면서 도망쳤다. 오리건 주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공화당 후보가 “동성혼 지지”를 선언하는 진풍경도 등장했다.

딕 체니와 엘리엇 회장이 동성혼을 지지한 이유

친밀한 사람이 동성애자임을 알게 될 때, 강경 보수파라고 해도 태도를 바꿀 가능성이 높아진다. 단연 의외의 사례는 딕 체니 전 부통령이다. 네오콘이 주도한 부시 정부에서도 손꼽히는 강경파였다. 그런데 2009년에 체니는 “동성 결혼을 지지한다”라고 밝혀 미국 사회를 놀라게 했다. 그에게는 동성애자 딸이 있다. 비슷한 사례로는 폴 싱어가 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이의를 제기하며 삼성 경영권 승계의 빈틈을 찔러온 엘리엇 펀드의 회장이다. 악명 높은 경영자인 그는 미국 공화당의 주요 후원자이지만, 동시에 동성애자 권리운동의 최대 후원자이기도 하다. 그의 아들이 동성애자다.

미국인은 대중문화에서 더 많은 게이 캐릭터를 만나고, 애플 CEO 팀 쿡과 같은 유명인사의 커밍아웃을 더 자주 접하며, 커밍아웃한 게이 가족이나 친구를 둘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이런 직간접 접촉의 효과는 뚜렷하다. 저명한 데이터 분석가 네이트 실버(그도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다)는 기존의 반대 의견에서 찬성으로 돌아서는 효과가 세대교체 효과만큼이나 크다고 분석했다. 세대교체와 의견 교체, 두 힘이 동시에 미국의 여론을 끌어당겼다.

종교적 보수주의에 기반을 둔 ‘문화 전쟁’은 미국에서 1980년대 이후 공화당 우위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이 ‘문화 전쟁’ 중에서도 공화당의 핵심 무기 두 가지가 동성혼과 낙태다. 하지만 적어도 동성혼 공세는 순식간에 유통기한이 끝나버렸다. 이제는 반대로 공화당이 이 문제를 회피하려 한다.

낙태는 좋은 대조가 된다. 낙태 찬반 여론은 대체로 팽팽한 채로 40년 동안 큰 변화 없이 안정되어 있다. ‘업샷’의 설명은 이렇다. 여론은 인간의 기본권을 최우선으로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낙태는 산모의 건강권·선택권과 태아의 생명권(태아를 사람이라고 본다면 더 강력해진다)이라는 ‘권리의 충돌’로 이해된다. 반면 동성혼은 오직 동성애자의 권리를 확장할 뿐 다른 누구의 권리도 빼앗지 않는다.  

개신교 근본주의 블록이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이들도 동성혼이 이성애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논리를 만들어서 ‘권리의 충돌’을 연출하기 위해 애썼다. “동성혼은 가정의 가치를 파괴하고, 동성혼은 사회의 도덕을 무너뜨리고, 동성혼은 더 많은 파트너를 두고 더 많은 질병을 옮기는 행태를 정당화할 것이고…” 등등.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이자 보수주의자인 앤드루 설리은 1989년 “동성 결혼의 권리를 요구하자”라는 칼럼을 썼다.
ⓒAP Photo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이자 보수주의자인 앤드루 설리은 1989년 “동성 결혼의 권리를 요구하자”라는 칼럼을 썼다.
이런 시도를 막아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은 딕 체니만큼이나 의외의 캐릭터다. 앤드루 설리번. <뉴 리퍼블릭>에서 저널리스트로 시작해 지금은 저명한 블로거다.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인 동시에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로 분류하는 독특한 인물이다. 부시 정부의 이라크전쟁을 열렬히 지지해 ‘꼴통’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정체성 때문에 급진주의자가 많은 게이 커뮤니티에서 그는 철저한 소수파였다.

1989년, 설리번은 이번 판결과 나란히 역사에 기록될 칼럼을 <뉴 리퍼블릭>에 싣는다. 이 칼럼에서 설리번은 “동성 결혼의 권리를 요구하자”라는 대담한 주장을 내놓는다. 동성혼 지지율이 12%에 불과하던 시절이었기도 하지만, 그의 주적은 여론이 아니었다. 게이 커뮤니티였다. 여기서는 결혼이란 이성애자의 생활양식이고, 부르주아 사회의 잔재이며, 각성한 동성애자라면 마땅히 거부해야 할 보수적인 제도라는 정서가 보편적이었다.

칼럼에서 설리번은 시민 결합이 아니라 동성 결혼이 목표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설리번에게 ‘결혼’이란 동성애자도 단기 연애에 탐닉하지 않고, 일부일처제를 받아들이고, 전통적인 가족제도에 합류할 수 있고, 사회 관습을 흔들지 않는다는 선언이었다. 결혼이 보수적인 제도라는 바로 그 지점이 열쇠였다.

동성애자의 주류 그룹이 ‘차이’를 강조하던 시절에, 설리번은 “우리가 그들과 같다고 설득하자”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동성애자를 주류 사회에 밀어 넣자는 것이 그의 전략이었고, 그 핵심 경로가 결혼이었다. 독자 정체성을 강조하던 게이 커뮤니티는 그에게 비난을 쏟아부었다. ‘결혼할 권리’라는 목표는 이성애자 문화에 동화하려는 음모로 간주되었다.

설리번식 ‘같음 전략’은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고립되었지만 오히려 주류 사회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설리번은 ‘사랑의 동등함’ ‘사회적 책임’ ‘전통의 존중’ ‘일부일처제로의 진입’을 끊임없이 내세웠다. 이런 일련의 설득 방식은 동성혼 문제를 특수한 정체성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권으로 인식시키는 효과를 냈다. 동성애자만의 ‘다른 권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같은 권리’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제 개신교 근본주의 블록이 기본권에 반대하는 처지로 내몰린다.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을 펴기가 곤란해진다. 보수적인 공화당 내에서도 리버테리언(자유 지상주의자) 그룹은 ‘같음 전략’의 지지자가 되었다. 국가가 시민의 권리에 차등을 두는 상황을 못 견디는 그룹이다. 민주당 지지층에 공화당 지지층 일부가 가세하면서 동성혼 지지 블록은 다수파를 형성해갔다. 공화당 지지층에서 동성혼 지지 여론은 대법원 판결이 나올 즈음에는 30%까지 올라와 있었다.

설리번식 ‘같음 전략’은 현실정치의 영역에서 최고의 후원자를 만나게 된다. 버락 오바마. 제44대 미국 대통령이자 최초의 비(非)백인 대통령. 오바마는 2008년 대선에서 동성혼에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성혼 지지는, 변화의 조짐은 보였으되 다수파는 아니었다. 오바마는 이 이슈를 회피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CNN닷컴</font></div>2012년 5월 오바마 대통령의 ‘동성혼 찬성’을 다룬 주간지 <뉴스위크>.
ⓒCNN닷컴
2012년 5월 오바마 대통령의 ‘동성혼 찬성’을 다룬 주간지 <뉴스위크>.
동성혼 반대파의 진지 허문 오바마식 접근법

오바마는 선명성을 내세우지 않았지만, 집권 후에는 반(反)동성혼의 진지를 하나씩 조용히 무너뜨렸다. 실질적인 장벽으로 작동하던 동성애자 군복무 제한 조치(일명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 조치)를 철회했다. 결혼을 ‘남자와 여자의 결합’으로 규정한 연방 결혼법의 법정 변호를 거부했다.

그렇게 다수파가 형성되기를 기다리던 오바마는 2012년 5월에 기회를 포착한다. 11월 대통령 재선 도전을 앞두고 그는 “동성혼에 찬성한다”라고 선언해 미국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오바마는 철저하게 ‘같음’의 언어를 사용한다. 동성혼 찬성을 선언한 방송 인터뷰에서 그는 기독교의 황금률, “네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를 인용한다.

계산은 정확했다. 이 선언은 그의 재선 가도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고, 공화당도 이 이슈를 파고들지 않았다. 여론의 흐름은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 2012년 대선으로 확인되었고, 오바마는 동성혼 지지를 선언하고 선거에 이긴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다.

연방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날, 오바마의 공식 논평은 또다시 설리번식 ‘같음 전략’의 모범이나 다름없었다. 오바마의 트위터 계정은 “게이와 레즈비언 커플은 이제 결혼할 권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다른 모두가 그렇듯이요”라고 썼다. 백악관 계정이 올린 짧은 영상의 제목은 ‘LOVE IS LOVE’다. 정체성 차이를 연상시키는 언어는 철저히 배제하고, 동성혼이 어떻게 다수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소수인종이 권리를 쟁취해온 역사가 얼마나 험난하고 힘든지, 그렇기 때문에 소수자일수록 어떻게든 이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아는 오바마다. 그가 정치적 스승으로 여기는 사울 알린스키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급진적 현실주의자였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FP</font></div>앤서니 케네디 미국 연방 대법원 판사. 진보와 보수가 갈리는 사안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곤 했는데 이번에 동성혼 인정에 한 표를 던졌다.
ⓒAFP
앤서니 케네디 미국 연방 대법원 판사. 진보와 보수가 갈리는 사안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곤 했는데 이번에 동성혼 인정에 한 표를 던졌다.
이 일련의 ‘다수파 만들기’ 기획은 연방 대법원에서 마지막이자 결정적인 조력자를 만났다. 앤서니 케네디. 흔히 진보와 보수 4대 4로 첨예하게 갈리는 사건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곤 하는 대법원 판사이지만, 성향상 보수에 더 가깝다는 평을 듣는다.

그런데 케네디가 동성 결혼 관련 사건에 대해서만은 지난 사건부터 일관되게 동성혼의 권리를 옹호하는 판단을 내렸다. 이번에도 그는 동성혼 인정에 필요한 마지막 한 표를 제공했고, 다수 의견 판결문도 직접 썼다. “재밌는 게요, 케네디의 판결문이 사실상 설리번의 1989년 칼럼 논리 구조와 판박이입니다. 결혼제도의 신성함과 모두에게 주어진 기본권을 강조하는 게 똑같거든요.” 연방 대법원의 기류에 관심이 많은 한 한인 미국 변호사는 이런 ‘관전평’을 내놓았다.

여론의 반전이라는 거대한 흐름은 물론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보수를 자처하는 이론가와 기회주의라고까지 욕을 먹던 최고 권력자가 끈질기게 다수파 전략을 밀고 나가지 않았더라면, 역사적으로 보아도 유난히 이른 시점인 2015년에 결과를 낼 수 있었을지는 알 수 없다. 동성 결혼이라는 전략은 분명 보수적인 기획에서 출발했으나 그 결과물은 놀라우리만치 급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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